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조선 시장에서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1, 2위를 다투는 자타공인 ‘조선 강국’입니다. 전 세계의 거대한 선박들이 한국에서 만들어져 바다를 누비고 있지만, 불과 50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은 대형 선박을 만들 수 있는 도크(Dock) 하나 없는 황무지였습니다. 기술도, 자본도, 신용도 없던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조선소를 지을 수 있었을까요? 그 뒤에는 현대그룹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의 무모해 보였던 뚝심과, 5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영국의 금융 자본을 움직인 신화 같은 핵심 비화가 숨어 있습니다.
1. 돈도 기술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미포만 백사장 사진 한 장
1970년대 초, 박정희 정부는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대형 조선소 건립을 추진했습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와 건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배를 만드는 조선업은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대형 조선소를 지으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했지만, 당시 가난했던 대한민국 정부나 현대에는 그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결국 정주영 회장은 차관(돈을 빌리는 것)을 얻기 위해 유럽의 금융 선진국인 영국으로 향했습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단 하나, 울산 미포만의 텅 빈 백사장 사진 한 장이 전부였습니다.
조선소를 지을 땅 외에는 공장도, 기술자도, 심지어 배를 주문한 선주(고객)도 없는 상태에서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의 차관 승인을 받아내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습니다. 영국 금융가들은 당연히 코웃음을 쳤습니다.
- “공장도 없고, 배를 만들어본 경험도 없는 당신들에게 수천만 달러라는 거금을 빌려줄 수 없습니다.”
2.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들다: 거북선이 바꾼 대한민국의 신용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차관 심사 책임자였던 람반 부총재를 만난 자리에서도 거절의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주머니에서 대한민국 500원짜리 지폐(당시 발행되던 종이 지폐) 한 장을 쓱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폐 뒷면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람반 부총재에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 지폐 뒷면을 보시오. 이것은 영국의 유명한 이순신 장군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우리 대한민국이 만든 세계 최초의 철갑선 ‘거북선’이오.”
정 회장의 말은 거침없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당신네 영국이 산업혁명을 시작하기도 전인 400년 전에 이미 이런 철갑선을 만들어 바다를 누볐던 민족이오. 다만 조선왕조의 쇄국정책 때문에 산업화가 늦어졌고, 6.25 전쟁으로 잠시 멈추었을 뿐, 우리 몸속에는 세계 최고의 배를 만들 수 있는 DNA와 잠재력이 그대로 살아있소!”
500원짜리 지폐 한 장에 담긴 역사적 팩트와 정주영 회장의 압도적인 기백에 영국 금융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저력과 정 회장의 확신에 찬 태도에 마음이 움직인 람반 부총재는 마침내 차관 승인의 결정적인 열쇠인 ‘추천서’를 작성해 주었습니다. 지폐 한 장으로 국가적 신용을 얻어낸 기적적인 순간이었습니다.
3. “배를 사주면 돈을 빌려주겠다”와 “배를 사면 조선소를 지어주겠다”
영국 은행의 차관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마지막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배를 사겠다는 구매자(선주)를 먼저 데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공장 건물조차 없는 백사장 상태인데, 수백억 원짜리 배를 주문할 바보는 세상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정주영 회장의 천재적인 비즈니스 수완이 발휘됩니다. 그는 그리스의 세계적인 해운 왕인 리바노스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울산 미포만 백사장 사진을 보여주며 제안했습니다.
- “당신이 우리에게 배 두 척을 주문해 준다면, 우리는 그 돈과 차관으로 세계 최고 품질의 조선소를 짓고, 영국보다 더 싸고 튼튼한 배를 만들어 주겠소. 만약 배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기한을 못 맞추면 계약금을 전부 돌려주고 이자까지 얹어주겠소.”
황당한 제안이었지만, 정주영 회장의 전무후무한 자신감과 파격적인 조건에 매료된 리바노스는 결국 26만 톤급 대형 유조선 2척을 주문하는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조선소가 없어서 배를 못 짓는 상황에서, 배 주문서를 먼저 받아내어 그 주문서로 은행 돈을 빌려 조선소를 짓는,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현대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반전 드라마였습니다.
4. 백사장에서 피어난 세계 ‘1위 조선업’ 대국의 신화
1972년, 마침내 울산 미포만 백사장에서 현대조선소(현 HD현대중공업)의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조선소 공장을 짓는 건설 작업과, 리바노스에게 약속한 대형 유조선을 만드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상상 초월의 공법을 감행했습니다. 도크를 파면서 동시에 옆에서는 배의 블록을 용접하는 식이었습니다.
주변의 모든 전문가가 “무모하다”, “부실 공사로 배가 가라앉을 것”이라며 손가락질했지만, 정 회장은 특유의 명언인 “이봐, 해봤어?” 정신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그리고 약속된 기한 내에 조선소 완공과 동시에 26만 톤급 유조선 2척을 완벽하게 건조하여 바다에 띄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 세계 조선업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던 순간이었습니다.
5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시작된 이 대담한 도전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핵심 산업 생태계를 만들었고,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한국을 세계 1위의 조선 강국으로 우뚝 서게 만들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무한한 도전 정신과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은 오늘날 불가능해 보이는 벽에 부딪힌 모든 현대인과 기업가들에게 가장 강력하고 가치 있는 핵심 교훈을 전해줍니다.

울산 미포만 “현대조선소”
시련이란?
뛰어 넘으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엎어지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
– 정주영 회장님의 명언중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