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는 나이가 없고, 시련은 끝이 아니며, 진정한 기술만이 사람과 기업을 살린다.”
오늘날 대한민국 대표 첨단 화학·소재 기업인 효성그룹. 이 대제국을 일군 창업주 만우(晩愚) 조홍제 회장의 삶은 그 어떤 영화보다 극적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대한 울림을 줍니다.
1. 19세의 늦깎이 중등교육, 30세의 대학 졸업
유학자 집안에서 자란 조홍제 회장은 남들보다 배움의 시작이 훨씬 늦었습니다. 19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중등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3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었습니다.
남들이 “너무 늦었다”고 말할 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배움을 이어나갔습니다. 그의 대기만성(大器晚成) 인생은 시작부터 남달랐습니다.
2. 삼성물산 공동 창립, 그리고 찾아온 배신과 퇴출
이후 그는 고향 후배인 이병철 회장과 손을 잡고 삼성물산을 공동 창립합니다. 조홍제 회장의 자본과 리더십이 보태져 삼성은 국내 1위 기업으로 폭풍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삼성의 성공 뒤에는 차가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삼성이 정상에 오르자 돌아온 것은 동업 청산 선언과 강제 퇴출 통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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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기로 했던 핵심 계열사 약속은 일방적으로 파기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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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남겨진 것은 폐업 직전의 부실기업 지분 약 3억 원뿐이었습니다.
법적 소송으로 다툴 법도 했지만, 그는 대인답게 소송 대신 묵묵히 흙바닥으로 내려왔습니다.
3. 56세, 빈손으로 일군 ‘효성’이라는 기적
삼성에서 쫓겨났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56세. 은퇴를 받아들여야 할 나이에 그는 단 15명의 임직원과 함께 ‘효성물산’을 설립하며 제2의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1966년 동양나이론을 설립한 그는 ‘기술입국’의 신념을 바탕으로 화학 섬유 제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기술 구걸은 기업의 귀속을 부른다. 작은 기술이 재산보다 귀하다.”
그는 젊은 한국 엔지니어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기술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오직 ‘자체 기술력’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4. 15년 만에 재계 5위, 삼성을 위협하는 세계 1위로
결과는 폭발적이었습니다. 동양나이론의 폭풍 성장으로 계열사는 24개까지 늘어났고, 동업 청산 불과 15년 만에 효성을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현재 효성은 스타킹과 레깅스 소재인 ‘크레오라(스판덱스)’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등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는 기술 거인이 되었습니다.
19세의 늦깎이 학생이 동업자에게 버림받고, 세계를 움직이는 독보적 1위 기술 기업을 일구기까지 걸린 시간 53년의 위대한 집념이었습니다.
🌟 우리가 조홍제 회장에게서 본받아야 할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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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란 없다 (대기만성): 19세에 공부를 시작해 56세에 다시 일어섰습니다. 나이는 무언가를 시작하지 못할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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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대하는 대인의 자세: 배신과 불의를 당했을 때 진흙탕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으로 당당히 증명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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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과 기술에 대한 고집: 당장의 이익보다 “기술 자립”이라는 묵묵한 길을 걸었기에 꺾이지 않는 세계 1위 기업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자신의 아호를 ‘늦되고 어리석다’는 뜻의 만우(晩愚)로 칭하며 평생 겸손을 잃지 않고, 전 재산을 사회와 학교에 환원했던 거인. 조홍제 회장의 삶은 오늘날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는 현대인들에게 거대한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시련을 기회로 바꾼 역사 속 인물에게서 인생의 지혜를 배웁니다. 위대한 삶을 거울 삼아 오늘 나의 걸음을 되돌아보고, 한 단계 더 성장해 나가는 것만큼 값진 일은 없을 것입니다.”
동기부여 되셨나요?
이 다음편에도 인물정보를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