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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SK를 일으킨 거인, 최종현 회장의 ‘100년을 내다본 선구안’

 

“내 시신을 매장하지 말고 불태워라. SK가 장례 문화 개선에 앞장서라.”

대한민국 대표 에너지·통신 대제국 SK그룹의 기틀을 다진 제2대 회장, 고(故) 최종현 회장  그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마지막 유언은 대한민국 사회 전체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유교적 관습이 지배적이던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 회장이 스스로 화장터로 걸어 들어가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회의 변화와 미래를 고민했던 거인, 최종현 회장의 삶은 승부와 도전, 그리고 위대한 헌신의 연속이었습니다.

1. 흙수저 유학생에서 ‘SK의 창조주’로

미국 유학 시절, 생활비가 없어 고학하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젊은 유학생  그는 훗날 대한민국 경제 지도를 바꿀 거대한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바로 ‘인재보국(인재를 키워 나라에 보답한다)’의 신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미래를 예견하고 일찍이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으나, 오일쇼크라는 거대한 파도에 밀려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2. 1조 원 정유사 인수와 ‘정치적 특혜’라는 오명

1980년, 그룹 전체 매출이 2,000억 원에 불과하던 시절, 그는 매출 1조 원 규모의 국영기업 ‘유공(한국석유공사)’ 인수라는 전대미문의 결단을 내립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정권과의 사돈 관계 때문에 “특혜를 받았다”는 거센 정치적 프레임과 비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후 1992년, 제1동화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냈을 때도 특혜 논란이 일자, 그는 잡음을 없애기 위해 당당히 사업권을 자진 반납하는 담대함을 보였습니다.

3. 정면돌파: 특혜 정국을 뭉개버린 ‘방탄 인수’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민영화 입찰이 열리자, 시장 예측가보다 1,000억 원 이상 높은 ‘4,271억 원’을 전격 제시하며 입찰에 성공합니다.

정치적 특혜라는 시비 자체를 자본과 실력으로 완벽히 뭉개버린 전대미문의 ‘방탄 인수’였습니다. 이로써 SK는 석유(에너지)와 이동통신이라는 강력한 양대 날개를 달게 되었습니다.

4. 인재를 향한 투자: 952명박사를 배출하다

그의 참된 위대함은 기업 성장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외환위기(IMF)라는 참혹한 시련 속에서도, 그는 국외 유학생들에게 매년 7만 5,000달러의 장학금을 조건 없이 지원했습니다.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사람을 키운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충주 민동산에 3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던 그는, 사람의 마음에도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의 장학 재단(한국고등교육재단)을 통해 하버드, MIT 등 세계 명문대 박사만 무려 952명이 배출되었습니다.

5. 유언이 된 장례 문화, 그리고 거인이 남긴 유산

1998년 그가 별세한 후, SK그룹은 그 뜻을 이어 500억 원을 투입해 ‘은하수공원’ 장례문화센터를 건립하고 사회에 무상 기부했습니다.

“기업이 아닌 미래를 사는 것”이라는 그의 경영 철학은 아들 최태원 회장에게 이어져 ‘SK하이닉스 인수’라는 또 한 번의 대기적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미국 유학길에서 인재보국을 꿈꾸고, 통신과 에너지를 남기며 국가의 장례 지도까지 바꾸기까지 걸린 시간 45년. 그는 진정한 대한민국 경제의 거인이었습니다.


💡 글을 마치며…

시련을 불도저 같은 담대함으로 정면 돌파하고, 버는 것 이상으로 사회와 미래 인재에게 헌신했던 최종현 회장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대한 울림을 줍니다.

역경을 뛰어넘은 위대한 인물의 스토리는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닌, 우리 삶의 올바른 이정표가 되어 줍니다. 동기부여가 되는 인물을 교훈 삼아 나 자신을 한 단계 더 높이 성장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나간 역사와 인물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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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삼성을 함께 일구고 쫒겨났던 거인, 효성그룹 조홍제 회장의 위대한 반전

 

“배움에는 나이가 없고, 시련은 끝이 아니며, 진정한 기술만이 사람과 기업을 살린다.”

오늘날 대한민국 대표 첨단 화학·소재 기업인 효성그룹. 이 대제국을 일군 창업주 만우(晩愚) 조홍제 회장의 삶은 그 어떤 영화보다 극적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대한 울림을 줍니다.

1. 19세의 늦깎이 중등교육, 30세의 대학 졸업

유학자 집안에서 자란 조홍제 회장은 남들보다 배움의 시작이 훨씬 늦었습니다. 19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중등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3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었습니다.

남들이 “너무 늦었다”고 말할 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배움을 이어나갔습니다. 그의 대기만성(大器晚成) 인생은 시작부터 남달랐습니다.


2. 삼성물산 공동 창립, 그리고 찾아온 배신과 퇴출

이후 그는 고향 후배인 이병철 회장과 손을 잡고 삼성물산을 공동 창립합니다. 조홍제 회장의 자본과 리더십이 보태져 삼성은 국내 1위 기업으로 폭풍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삼성의 성공 뒤에는 차가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삼성이 정상에 오르자 돌아온 것은 동업 청산 선언과 강제 퇴출 통보였습니다.

  • 함께 나누기로 했던 핵심 계열사 약속은 일방적으로 파기되었고,

  • 그에게 남겨진 것은 폐업 직전의 부실기업 지분 약 3억 원뿐이었습니다.

법적 소송으로 다툴 법도 했지만, 그는 대인답게 소송 대신 묵묵히 흙바닥으로 내려왔습니다.


3. 56세, 빈손으로 일군 ‘효성’이라는 기적

삼성에서 쫓겨났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56세. 은퇴를 받아들여야 할 나이에 그는 단 15명의 임직원과 함께 ‘효성물산’을 설립하며 제2의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1966년 동양나이론을 설립한 그는 ‘기술입국’의 신념을 바탕으로 화학 섬유 제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기술 구걸은 기업의 귀속을 부른다. 작은 기술이 재산보다 귀하다.”

그는 젊은 한국 엔지니어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기술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오직 ‘자체 기술력’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4. 15년 만에 재계 5위, 삼성을 위협하는 세계 1위로

결과는 폭발적이었습니다. 동양나이론의 폭풍 성장으로 계열사는 24개까지 늘어났고, 동업 청산 불과 15년 만에 효성을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현재 효성은 스타킹과 레깅스 소재인 ‘크레오라(스판덱스)’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등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는 기술 거인이 되었습니다.

19세의 늦깎이 학생이 동업자에게 버림받고, 세계를 움직이는 독보적 1위 기술 기업을 일구기까지 걸린 시간 53년의 위대한 집념이었습니다.


🌟 우리가 조홍제 회장에게서 본받아야 할 3가지

  • 늦은 나이란 없다 (대기만성): 19세에 공부를 시작해 56세에 다시 일어섰습니다. 나이는 무언가를 시작하지 못할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 시련을 대하는 대인의 자세: 배신과 불의를 당했을 때 진흙탕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으로 당당히 증명해 보였습니다.

  • 기본과 기술에 대한 고집: 당장의 이익보다 “기술 자립”이라는 묵묵한 길을 걸었기에 꺾이지 않는 세계 1위 기업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자신의 아호를 ‘늦되고 어리석다’는 뜻의 만우(晩愚)로 칭하며 평생 겸손을 잃지 않고, 전 재산을 사회와 학교에 환원했던 거인. 조홍제 회장의 삶은 오늘날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는 현대인들에게 거대한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시련을 기회로 바꾼 역사 속 인물에게서 인생의 지혜를 배웁니다. 위대한 삶을 거울 삼아 오늘 나의 걸음을 되돌아보고, 한 단계 더 성장해 나가는 것만큼 값진 일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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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편에도 인물정보를 남겨보도록 하겠습니다.